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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

2016.03.1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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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고종 25년) 경성전환국에서 발행한 1원 은화, 10문 적동화, 5문 적동화 3종이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이다.

 

이들 주화에는 ‘개국 497년’이라는 연호가 들어가 있고 주화의 앞면 상부에는 태극인장이 찍혀 있으며, 좌우에는 오얏나무 가지가 교차되어 있다. 또한 뒷면 중앙에는 쌍룡이 그려져 있어 일본 주화와 다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태극은 국가를, 오얏나무 가지는 이씨 왕실을, 그리고 쌍룡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1876년 조선의 문호가 개방되어 외국과의 무역이 활발했음에도 당백전, 당오전의 남발 등으로 화폐제도는 사실상 붕괴된 상태였다. 게다가 개항지마다 외국의 화폐들이 범람하자 외국과의 통상에 반드시 필요한 근대적인 화폐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당시 세계 여러 나라 금본위(金本位)제도나 은본위(銀本位)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금화나 은화가 본위화폐로서 지배적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상평통보는 국제시장에서 가치가 빈번히 변동하는 동(銅)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안정된 가치를 지니지 못했고, 운반이나 사용 등에도 상대적으로 많은 불편이 따랐다.

 

이러한 이유로 조정에서는 신식 주화들을 발행하기 위해 경성에 상설 조폐기관인 전환국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최초의 전환국은 제조기술과 기술인력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근대적인 화폐를 제조하지 못했으며, 국가재정의 결핍을 보충하기 위해 당오전의 발행만을 담당해야 했다. 신식 화폐 주조는 당시 재정고문이던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전환국의 총판으로 임명된 뒤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1886년 독일로부터 조폐 기계를 수입하고, 다음해 2월 선혜청 별청 자리에 전환국 건물을 신축하여 신식 화폐를 발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1888년에 발행된 3종의 신식 화폐는 실질적으로 거의 유통되지 못했다. 우선 신식 화폐를 주조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금과 은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초 예상했던 것만큼 조폐 수익이 많지 않았고, 사회·경제적으로도 신식 화폐를 받아들일 기반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인 1원 은화와 10문·5문 적동화독일제 기계와 기술로 발행되었지만 실제로는 거의 유통되지 못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 (한국의 박물관: 화폐금융, 2001. 6. 28., 문예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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