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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국민의 눈물로 끓인 라면

2015.12.17 18:51
기타 조회 수 2509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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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은 라면을 좋아한다. 세계 최대 라면 소비국은 중국이지만 1인당 라면 소비량으로 따지면 한국이 최고다.

한 사람이 1년에 68개를 먹는다고 하니까 적어도 1주일에 한두 번은 라면을 먹는 셈이다.

 

라면이 국내에서 처음 생산된 것이 1963년이니까 벌써 50년이 됐다.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 개발된 해로 따지면 55년이다.라면, 이 위대한 음식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반백 년 라면의 역사는 시련에서 출발한다. 그 탄생사는 전쟁의 고통, 그 혼란에 내동댕이쳐진 개인의 눈물,

그리고 힘든 세월을 이겨내는 인간의 의지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라면의 역사는 고난 극복의 궤적이며

인간 승리의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의 땀과 눈물이 모두 스며 있다.

 

인스턴트 라면은 1958년 안도 모모후쿠라는 사람이 처음 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 일본 국민들

대다수는 미군이 제공하는 밀가루로 연명했다. 뒤집어 보면 국수 장사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침 직장을 잃은 안도는 장기간 보관해도 원래의 맛을 살릴 수 있는 국수를 대량 생산해 사업화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업이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았다. 거의 10년 동안 국수 개발에 매달린 안도는 마침내 가진 돈을

모두 날려버리고 가정은 파탄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나이도 이미 40대 중반에 접어든 안도는 좌절한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기로 결심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하자며 포장마차를 찾았다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보던 안도는 포장마차 주인이 어묵에 밀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기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젖은 국수를 기름에 튀기면 밀가루 반죽에 포함된 수분이 빠르게 증발하면서

밀가루에 숱한 구멍을 남긴다. 이 구멍에 뜨거운 물이 들어가면 국수가 다시 부드러운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 안도는 연구에 매달린 끝에 1958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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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하게 먹는 즉석 라면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라면 생산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는데

안도가 라면 제조 방법을 특허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도 쉽게 라면을 만들 수 있었다.

 

한국에서 라면을 처음 생산한 것은 1963년이다. 경쟁이 치열한 일본 라면업계에서 한국에 라면 제조 기술을

이전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세계 최고지만 라면이 처음 국내에 선보였을 때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밀가루 음식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느끼한 국물에 값도 싼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라면은 가격이 10원으로,

당시 식당에서 사 먹는 백반이 30원이었으니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라면이 널리 보급된 것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 덕분이다. 쌀을 아끼려고 라면 보급을 장려한 것인데 대통령까지 관심을 보였다.

대통령이 우리 국민은 맵고 짠 것을 좋아하니 느끼한 국물 대신 고춧가루를 이용한 수프를 개발해보라고

제안하면서 개발 자금까지 지원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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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라면이 패전의 허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발달했다면, 한국 라면은 산업화 도중 식량 자급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라면이라고 하면 인스턴트 라면부터 떠올리지만 라면은 사실 생라면을 기름에 튀기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생라면은 어디서 비롯된 음식일까?

 

일반적으로 생라면의 뿌리는 중국으로 보고 있다. 1870년대, 요코하마의 부두에서 일하던 화교 노동자들이 먹었던

국수를 원조로 본다. 이들이 고향에서 먹던 ‘라몐(拉麵)’이 일본의 생 ‘라멘(らめん)’의 뿌리라고 하는데,

라몐이란 쉽게 말해서 수타국수다.

 

수타국수가 밀가루 반죽을 바닥에 때리며 늘리는 것과 달리 라몐은 공중에서 그대로 잡아 늘리는 것이 다르고

수타국수보다 면발이 훨씬 가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는 수타국수를 주로 짜장면으로 비벼 먹지만

중국은 라몐을 쇠고기 국물에 말아 먹는다. 때문에 겉보기에도 일본의 생라면과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생라면을 예전에는 지나(支那)소바, 또는 주카(中華)소바라고 불렀다. 생라면에는 이렇게 격변의 시대에

고향을 떠나 요코하마에 와서 돈을 벌어야 했던 중국 쿠리(부두 노동자)의 눈물이 배어 있다.

 

라면은 지나치게 먹으면 건강에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배고픈 사람에게 라면은 싼값에 허기를 잊도록 해주는 구원의 음식이다. 옛날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라면에는 극한의 가난을 견디어낸 중국 부두 노동자들의 질곡과 패전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일본인의 노력,

산업화 과정에서 잘살아보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맨 한국인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출처: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google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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