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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UK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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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짝퉁" 샤오미 만든 레이쥔!

2015.12.28 19:47
잡담 조회 수 4384 추천 수 0 댓글 1

샤오미의 CEO 레이쥔 어록 18선

 

1. 창조란 미친 출발이다.

2. 뭐 샤오미가 애플을 모방한다고? 애플을 뒤엎어버리겠다.

3. 고객을 샤오미의 두뇌로 만들어라

4. 고객은 왕이 아니다. 고객은 친구이자 개발자이다.

5. 샤오미는 집단지성과 참여의식을 거래하는 회사이다.

6. 태풍길목에 서면 돼지도 하늘로 날 수 있다.

7.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만들어라.

8. 우리의 꿈은 세상의 모든 삶을 샤오미의 디지털라이프로 연결하는 것이다.

9. 나는 레이잡스라는 별명이 싫다. 애플과 구글, 아마존을 덧셈해보라, 샤오미가 나타날 것이다.

10. 중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스마트폰을 바꿔놓겠다.

11. 인터넷 사고란 무엇인가? 집중, 극치, 쾌속, 마우스투마우스(입소문)

12, 샤오미와 세계의 발전은 더 완벽해지고 싶은 욕구로부터 비롯된다.

13. 창업의 성패는 중요하지 않다. 시도와 과정이 중요하다.

14. 물결을 일으킬 수 없다면 물결을 탈 수는 있어야 한다.

15. 인터넷은 설비가 아니다. 싱킹(thinking)그 자체이다.

16. 7천만 샤오미 팬덤(광팬)이 있기에 샤오미가 있다.

17. 고객의 요구를 실시간으로 수용하는 것이 샤오미 최고의 기업가치.

18. 나의 꿈을 내건 깃발의 하강식은 영원히 없다.

 

레이쥔은 내가 친아들 다음으로 아끼는 사람이다. - 글로벌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세계를 사고 세계를 팔아라.” -레이쥔의 모교 우한대학 인근, 560년 역사의 짝퉁상가의 구호

 

한중FTA시대를 맞아 ‘알리바바’와 ‘샤오미’, 어느 쪽이 더 신경 쓰이는가? 전자는 아직 내수 위주라 ‘얼씨구’ 추임새 한번 넣어주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아 탈이다.

 

우리나라 정관계는 한중FTA가 주요농산품을 관세면제 대상에서 제외하였으니 성공한 협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 또한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중국의 저가 농수산물 수입만 근심하고 잉여공산품의 수입급증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지? 극강의 가성비, 샤오미를 보면 뭔가 찜찜하다. 중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들 중에 의외로 값싸고 질 좋은 가성비를 갖춘 중국공산품 때문에 자국의 주요산업이 초토화되어 버린 나라가 한 두 나라가 아니라서 뭔가 불안하다. 후일 이러한 우려가 ‘걱정도 팔자였다!’ 기우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면 참 좋겠다.

 

1. 샤오미의 시공간 키워드는 ‘11월 11일, 후베이 우한’

 

인간은 환경에 의존하지 인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헤로도토스 '역사'

미생물이 그 배양액에서 자라듯 인간도 자연적·인문적·사회적 환경에서 자란다. -문협

 

공포의 가성비, 샤오미의 오너 레이쥔(1969~), 그는 누구인가? 상대가 상대인 만큼 심층분석을 하고자 한다. 그런데 대륙의 중심부 후베이 우한 출신인 그를 알려고 문자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오리무중이다. 도대체 이 사람의 정신세계, 의식형태, 행동양식의 추이는 뭔가? 그리고 이것들을 ‘샤오미’로 물화한 이 사람의 정체는 뭔가? 지구상의 천재를 초월한 ‘외계인 급 괴재’일까, 아니면 ‘미친 짝퉁 대마왕’에 불과할까? 예사의 미시적 단편적 접근방법으로는 가늠이 안 된다. 할 수 없이 문자 밖으로 나온다. 비장의 ‘우주의 망원경’ 과 ‘미물의 현미경’을 함께 꺼내들고자 한다.

 

세상에 이음동의어는 없다. 우주란 ‘집 우’, ‘집 주’가 아니다. ‘우’는 공간을, ‘주’는 시간을 뜻한다. 즉 우주는 천체를 비롯한 만물을 포용하는 물리학적 공간인 ‘우(宇)’와 과거, 현재, 미래 구별 없는 무한한 시간인 ‘주(宙)’가 질서 있게 통일된 세계를 뜻한다. ‘샤오미 레이쥔’을 시간(역사)과 공간(지리)의 십자가 한가운데 놓고 조준하고자 한다. 실제로 사회과학에서 역사와 지리의 기반밖에 세운 모든 학설이나 이론은 가설일 뿐이라고 하지 않던가. 줌인-줌아웃하며 ‘우주의 망원경’의 영점조준을 잡았다. 샤오미 레이쥔의 시공간 키워드는 ‘11월 11일, 후베이 우한’이다.

 

“샤오미는 11월 11일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중국 최대 쇼핑이벤트인 ‘광꾼제’에서 2268억원어치 상품을 팔았다." -국내 신문기사

 

거듭 말하지만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는 없다. 11월 11일 ‘광꾼제(싱글데이)’라는 이름의 중국최대 ‘빅세일 데이’만 있을 뿐이다. 만일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이 날을 검은색을 싫어하는 일반국민들의 성향을 무시하고 ‘차이나 블랙프라이데이’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십중팔구 일체의 매매를 삼가는 대흉일로 인식되어 상품이 동나는 날은커녕 지갑을 닫는 날이 되었을 것이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찬란한 대한민국 ‘코리아’에 감히 어둠과 죽음의 합성어 ‘블랙프라이데이’를 붙인 우리나라 극소수 관료들아! 당신네 자녀나 사적기념일이라면 이런 식의 이름을 지었겠는가? 억장이 무너져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니 ‘저X, 먼지 좀 털어보라’ 하지 말고 '데일리안' 12월 17일자 칼럼(블랙프라이데이? '창조경제' 아닌 '상조경제')을 참조하여 시정하길 바란다.

 

2. 중일 양국의 ‘ 블랙프라이데이’ 의 추억

 

중국 근현대사상 진짜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부를 만한, 하루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1’이 4개 겹치는 11월 11일, 그해 그날은 한 층 더 공교롭게도 요일마저도 금요일이다.

 

그날은 바로 ‘1938년 11월 11일,’ 중화민국 임시수도 우한전역이 일제침략군에 의해 점령되던 날이다. 그 날 이후, 중국은 다시 임시수도를 서부내륙 산악도시 충칭으로 옮겨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 날은 일본침략군 입장에서도 ‘블랙프라이데이’였다.

 

“딱, 거기까지.” 대나무를 쪼개는 듯 일본군의 파죽지세도 지금으로부터 77년전 11월 11일도 금요일 그 날까지였다. 호랑이를 올라탄 듯 일본군의 기호지세도 중국의 중심 후베이 우한 그곳까지였다. 그날 그곳 이후부터 액셀러레이터만 있었지 브레이크가 없었던 일본제국주의는 패몰의 깊은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1937년 7월 7일 중국 본토를 전면 침공한 일본군은 그해 11월 중화민국 수도 난징을 점령했다. 약 한달 동안 30만 양민을 학살하는, 즉 매일 ‘민간인 1만명 죽이기 파티’, 남경대학살의 만행을 저질렀다. 그 후에도 일제는 산시, 산둥, 허베이, 상하이, 광저우를 차례로 점령했다. 임진왜란 이래 숙원을 풀기 위하여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중국 내지를 마음껏 능력껏 유린하였다. ‘이토록 손쉬운 상대인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삼켜버릴 걸’ 하듯 정복자의 쾌감에 탐닉했다. 연전연승에 도취된 나머지 일제는 어떠한 외세의 무력이나 문화도 흔적도 없이 빨아들여버린, ‘검은 늪 대륙의 스펙’을 망각했다.

 

“아차차, 너무 깊이 들어왔구나.” 중국, 중심성, 중심시, 3개의 ‘中’이 겹치는 우한을 점령한, 그 4개의 ‘1’이 겹치는 금요일 그 날 이후부터 일본군은 중국 전선에서 교착상태에 빠져버렸다. 일본군은 답답하고 찜찜한 분위기를 벗어나려고 군홧발의 방향을 동남아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기면 이길수록 망해가고 있는 듯한” 기괴한 공포감은 갈수록 증폭되었다. 하와이를 불길한 예감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구명튜브쯤으로 착각했던가. 일제는 1941년 12월 8일, 자폭행위나 다름없는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감행하였다. 태평양전쟁 초반, 일제는 점령지역을 확대해가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발에서부터 다리로, 허리로, 어깨로, 머리로 패망의 검은 늪으로 침몰하여 갔다.

 

일제 침략사 후반전(1938.11.11~1945.8.15)을 단칼에 갈겨 일괄한다면, 광란의 침략댄스스텝이 후베이 우한에서 엉켜버린 후, 패망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허우적대는 몸부림의 궤적이다.

 

일본이 점령했다고 착각한 것은 물위에 뜬 수초와 수초를 연결한 수초줄기였을 뿐, 중국이라는 검은 늪 자체는 아니었다. 그런데 늪 속의 보물을 차지하겠다고 늪에 들어온 자는 늪에 빠져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탐욕을 반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러운 늪에 속았다며 애꿎은 늪을 원망하는 정신 착란증세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 전범국가(유엔헌장 제53조, 제107조 ‘적국’으로 표기) 주제에 피해국인 마냥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대는 일본우익 행태의 본령도 이러한 착란증세에 있다고 해부 분석된다.

 

3. 위대한 짝퉁, 샤오미 레이쥔의 머리는 99개

 

하늘에는 9개의 머리가 달린 새, 땅에는 후베이 사람 -중국속담

9두조 후베이 사람, 99두조 레이쥔 -문협

 

비단 일본군이나 외세뿐만 아니다. 후베이는 중국인에게조차 심연의 검은 늪이다. 오죽했으면 중국이 낳은 20세기 세계적 지성인, 린위탕마저도 후베이 사람을 일컬어 ‘허심탄회한 맹세를 선언하는 동시에 머리속으로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혀를 내둘렀을까.

 

중국 땅 서쪽 절반 대부분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사막과 황무지, 고산지대이고, 나머지 동쪽 절반에 경제력의 9할이 쏠려있다. 그 동쪽 절반 중국경제지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성이 후베이다. 후베이의 중심도시 우한에서 동서남북으로 1000km 정도를 가보자, 각각 상하이, 충칭, 광저우, 베이징이 나타난다. 이들 중국의 4대 주요도시를 야구장의 홈, 1루, 2루, 3루라 치고 이를 서로 연결하면 다이아몬드 모양이 나온다. 바로 그 다이아몬드의 중심부, 마운드에 후베이 우한은 투수처럼 우뚝 자리잡고 있다.

 

순종 상인종, 중국상인팀의 상위타선, 톱타자 광둥상인부터 2번 푸젠상인, 3번 저장상인은 물론, 슬러거 4번타자 상하이상인마저도 후베이 우한상인 투수의 변화구에 타이밍을 빼앗겨 무릎을 꿇고 만다. 외국상인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후베이에서 장사를 하는 거의 모든 타지역출신 중국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여기서 장사를 하려면 속지 않는 법보다 속고 나서 참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속고 나서도 할 말 없게 만드는 자들이 후베이의 장사치들이다. 간교하고 음흉한 그들에게 속는 스트레스는 마치 쓰디쓴 금계랍을 먹고 난 벙어리의 고통일 것 같다.”

 

오죽 답답했으면, ‘한 음흉’ 하는 중국상인마저 같은 중국의 후베이 상인을 ‘간교’, ‘음흉’이라는 극단적인 용어까지 동원하며 비판하겠는가.

 

“하늘에는 9개의 머리가 달린 새, 땅위에는 후베이 사람” 후베이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는 대련이다. 후베이 사람 한명의 머릿속에는 여덟 개의 작은 머리가 또 들어 있어 그 영리함이 사람을 놀라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제는 후베이 사람의 교활함을 꼬집는 이 대련을 정작 본인들은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점이다. 상하이와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대도시에 ‘9두조’라는 간판을 걸어놓은 상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상점의 주인은 십중팔구 후베이 사람이다.

 

그렇다면, 위대한 짝퉁, 샤오미 주인의 머리속에는 새머리가 몇 개나 들어있을까? 후베이의 보통사람도 8개나 들어있음을 감안한다면, 레이쥔의 머리속에는 최소 98개의 새머리가 들어 있을 것 이다. 그래서 “9두조 후베이사람, 99두조 레이쥔” 이라는 새로운 대련이 하나 더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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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휴대폰 제조업체 '샤오미' 홈페이지 사진 캡처. 정중앙에 붉은 티쇼프를 입고 앉아있는 사람이 레이쥔 CEO.

 

4. ‘샤오미’는 사람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몽롱미’

 

중국 제1의 강 장강이 관통하고 중국 최대의 호수 둥팅호를 알처럼 품어서일까. 후베이는 짙은 안개로 유명하다. 우한텐허 국제공항도 안개로 인한 국내외선 비행기 연발착이 제일 많은 공항으로 악명 높다. 안개 낀 정경이 주는, 그 어른어른하여 희미한, 몽롱한 아름다움, ‘몽롱미(필자의 조어)’. 사람의 의식을 흐리멍덩하게 하는 의미를 곁들인 ‘몽롱미’는 기지, 풍자, 반어, 해학 네 가지의 하위개념을 품은 서양미학의 골계미에 가깝다. 후베이 출신 레이쥔의 샤오미에도 사람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불온한 아름다움, 몽롱미가 도사리고 있다.

 

'삼국지'의 주된 전쟁터였던 후베이는 '삼국지'에서 극적인 장면이 많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삼고초려의 양양에서부터, 적벽대전의 적벽, 관우의 관용이 빛나는 화용도, 관우가 참수형을 당한 당양 등등, 끝도 없이 많다. 강과 호수와 안개가 많은 후베이는 신의와 배신, 충성과 온갖 모략이 넘쳤던, 비장미를 감싼 몽롱미가 흐르는 강호의 세계라고 부를 만하다.

 

후베이 사람은 중국사람 중에서 ‘몽롱미’의 원래 표현 ‘장후치'가 제일 강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장후치는 경제적 실리에 밝고 교활하고 속임수에 강한 야바위 기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후베이 사람에게 시장이란 사람들이 서로를 속이도록 허가된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장후치 몽롱미의 절대경지를 추구하는 그들은 자신의 거짓말이 드러나도 절대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본심을 타인에게 쉽게 노출시키지도 않는다.

 

중국 경제지도의 중심은 후베이, 후베이의 중심은 우한, 우한의 상업중심은 한커우, 한커우의 중심 상가는 한정제(1456~)이다. 그 5개의 ‘중’이 겹치는 곳에 위치한 한정제는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짝퉁시장 중심이다. 특히 한정제는 해적판 서점이 많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해적들이 정품 배 갑판에 밀어닥치듯, 정품의 5분의 1 가격의 신간서적이 판을 친다. 한정제 말고도 후베이는 값싸고 질 좋은(?) 짝퉁 상품이 많기로 사해만방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현 제12기 전인대 대표(국회의원)를 겸하고 있는 레이쥔이 후베이가 낳은 대표적 기업가라면 20세기 후베이출신의 대표적 정치가는 린뱌오이다. 자신을 후계자로 키워준 마오쩌둥을 배신한 린뱌오는 쿠데타 음모가 발각되자 적국이었던 소련으로 야반도주하려다가 몽골사막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린뱌오는 노출하지 않는 특성과, 과묵한 것 같지만 등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전형적인 9두조 후베이 사람이었다.

 

중국의 31개 광역지방행정구역별 지역특색은 각각 31개의 개별국가라 할 만큼 상당히 다르다. 반면에 인구는 많으나 유럽보다 널찍한 땅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원래 민족성이 그런지, 중국인의 (배타적) 지역감정은 별로 드러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예외라면 예외가 딱 하나 있다. 린뱌오처럼 겉과 속이 다른 다중인격자 후베이 사람과 거래할 때는 ‘항상 깨어있으라’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중국인의 수가 적지 않다.

 

그래서 '중국거상열전' 제5편 중국의 대표적 여성기업가 동밍주가 공개석상에서 ‘레이쥔은 사기꾼’ 등 독설의 십자포화를 퍼부었던 이면에는 후베이 사람에 대한 여타지역 중국인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5. 나는 세상 사람과 다른 비상한 인물이야

 

레이쥔은 1969년 12월 16일 후베이 우한 인근인 맨양현 자오완촌에서 평범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고향마을은 동팅호 북안에 위치하여 농무가 낀 풍광이 그윽했다.

 

레이쥔은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매사에 진지하면서도 자의식이 강한 모범생이었다. 어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세상, 흥미로운 주제, 새로운 개념들을 펼치길 즐겨했다. 평소 겸손한 편이나 간혹 “나는 세상 사람과 다른 비상한 인물이야” 나르시시즘에 가까운 독특한 캐릭터를 드러내기도 했다. 유년기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고향마을의 조명기구는 등잔불이 전부였다. 레이쥔이 초등 2학년 때 어느 날 저녁, 컴컴한 부엌에서 밥을 짓던 그의 어머니는 천장위의 환한 불빛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낮같이 밝은 빛을 발하는 유리알, 그 발광체의 정체는 일곱 살 어린 아들이 건전지 두개와 은박호일 튜브와 종이를 나무상자에 넣어 만든 축전지에 연결시킨 백열전구였다. 마을사람들은 레이쥔네 집의 환한 불빛을 보고는 부나방처럼 몰려들어왔다. 그들은 백열전구와 레이쥔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세상을 환하게 빛낼 신동이라고 입을 모아 칭송했다.

 

레이쥔은 초등3년 때 전학 간 읍내의 초등학교에서도 군계일학이었다. 그의 옷깃에는 항상 지덕체를 겸비한 ‘3호학생’의 징표인 붉은 꽃이 달려있었다. 1984년 레이쥔은 맨양사범부속중학교를 졸업하고 후베이 제일 명문고 센타오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교시절 레이쥔은 바둑을 좋아하여 학교 바둑경진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당시(唐詩)를 좋아했는데 특히 오대십국시대의 비운의 황제, 이욱의 '우미인'을 읊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전교 10권내의 우등생이자 모범생 레이쥔은 1987년 9월, 중국의 10대 명문대학 우한대학(2014년 중국대학서열 제5위) 컴퓨터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6. 내 꿈을 내건 깃발의 하강식은 영원히 없다

 

가난한 자는 책으로 말미암아 부자가 되고 부자는 책으로 말미암아 존귀해진다. -고문진보

 

어느 늦가을 밤. 우한대학 신입생 기숙사 사감은 대운동장을 바라보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한 학생이 홀로 학교 대운동장을 돌고 또 돌고 있었다. 도대체 저 학생은 누구일까, 낯설지 않은 얼굴 윤곽과 체격인데 벌써 몇 바퀴째지? 청년은 가로등 불빛이 내리는 벤치에 앉았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앳된 얼굴이 드러났다. 아, 18세 새내기 장학생, 레이쥔!, 레이쥔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을 펼쳐들었지만 책읽기에는 사위가 너무 어둡다. 다시 책을 옆구리에 낀 채로 걷기 시작했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가끔씩 하늘을 쳐다보며 일정한 속도와 보폭으로 돌고 또 돌았다. 무엇이 평소 조용하던 모범생에게 이런 기이한 행동을 하도록 한 것일까? 그것은 옆구리에 끼고 있는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그 책은 낮에 도서관에서 빌린 '실리콘밸리의 불'(Fire in the Vally).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영웅들의 이야기가 생동감있게 그려진 책은 레이쥔을 몇 시간 째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사서가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었으니 나가달라고 하자 레이쥔은 펼친 책을 든 채로 자리에 일어섰다. 책을 읽으면서 기숙사로 걸어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갑자기 그의 가슴속이 활화산의 마그마처럼 들끓어 올랐다. '실리콘밸리의 불'의 불씨가 그의 가슴에 옮겨 붙어 광야를 태우듯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그는 심장이 쿵쾅거려 잠은커녕 좁은 방에 머물 수조차 없었다. 기숙사를 뛰쳐나와 대운동장을 향해서 달렸다.

 

달이 별자리를 몇 번이나 옮겨가는 시간이 흐르도록, 대운동장을 돌아도 또 돌아도 가슴속 불길은 진정시킬 수 없었다. 레이쥔은 급브레이크를 밟듯 발걸음을 겨우 멈췄다. 고개를 들어 가장 크고 밝고 높이 떠 있는 별 하나를 뚫어지듯 바라보았다. 하늘이 놀라고 대지를 들썩일만한 위업을 이루는 위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 새벽별의 높이만큼 자신의 꿈의 깃발을 게양했다. 그리고 맹세했다. 내 꿈을 내 건 깃발의 하강식은 영원히 없다.

 

4반세기가 탄환처럼 지났다. 2014년 우한대학 대강당에서 모교를 빛낸 대선배자격으로 샤오미의 레이쥔 총재는 후배들 앞에 섰다. 자신의 하강식 없는 꿈의 깃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그날 밤 별을 보면서 굳게 다짐했다. 남다른 목표를 정하여 꿈을 현실화하자! 우선 2년 만에 모든 학점을 이수하자, 다행히도 우리 우한대학에는 독특한 학점제도가 있었다. 지금도 있지요? 조기졸업제도. 1학년 2학기부터 나는 이수학점의 2배의 학점을 신청했다. 사실 어려운 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할 수 있다. 고3시절과 비교해보라, 대학과정은 느슨하고 한가하다.

 

나는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성공과정 중에 있다. 성공중의 나의 비결이라면 몽롱한 꿈을 명료한 목표로 전환한 것이다. 눈 감은 꿈은 몽롱하여도 되지만, 눈 뜬 꿈, 희망의 목표는 명료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명료한 목표를 향하여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실패는 죄가 아니다. 목표가 없거나 너무 낮은 것이 죄다. 목표가 없는 삶은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다. 정신적 식물인간이다. 사랑하는 후배들이여, 목표를 너무 낮게 설정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항상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것 이상을 추구하라. 자신이 이룬 일에 결코 만족하지 말라. 성취하기만 하면 곧 자신의 목표를 높여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중간에서 넘어진다 하더라도 결코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돌진하라. 정상에 오르려면 많이 넘어져야 한다. 기어다는 곤충만 넘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곤충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다. 목표가 작심삼일일 수도 있다. 그러면 포기하지 말고 또 새 계획을 세우고 새 목표를 정해라, 다시 말한다. 꿈을 품은 후에 그 꿈을 절대로 포기하거나 축소하지 말고 끝까지 악바리로 실천해보라, 성공할 때까지 자신이 한 번 내건 꿈의 깃발을 죽어도 내리지 말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전진해나가라, 그러면 성공의 최고봉이 그대를 반기며 나타날 것이다. 나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후배들이여, 끝으로 나의 연설을 이 한마디로 종결하고자 한다. 꿈의 힘을 믿어라!”

 

레이쥔의 격정 연설을 마치자 우한대학 대강당에 운집한 청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쳤다. 무려 5분간이나 계속된 기립박수였다.

 

7. 모교는 우한대학, ‘부교(父校)’는 우한전자상가

 

레이쥔의 대학 1학년 성적표는 올A+, 컴퓨터학과뿐만 아니라 전교 1학년생 중 최고의 성적이었다. 학비 전액 면제에다 도서구입비조로 장학금도 탔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컴퓨터 공학이란 기초이론과학이 아니다. 실제 산업에 응용할 수 없다면 올A+나 올F나 매 한가지, 컴퓨터 공학이 재화를 창출할 수 없다면 뜬 구름 같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레이쥔은 2학년 때부터 수업외의 시간에는 캠퍼스 바깥을 쏘다녔다. 큰 배낭을 걸머지고 컴퓨터 상공인들의 육박전이 벌어지는 최전선, 우한전자상가로 뛰어들었다. 소프트웨어, 피시 조립, 워드프로세스 등 IT실무기술은 물론 최대의 이윤을 뽑기 위한 영업 전략과 상술을 체득했다. 전자상가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레이쥔을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들은 레이쥔이 명문대학생이라는 티를 전혀 내지 않고 항상 겸손하고 소탈해서 좋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레이쥔은 모교(母校) 우한대학에서 컴퓨터 이론을 배웠고, 부교(父校) 우한전자상가에서 IT실무를 배웠다. 그러나 중국 중부지역의 IT 유통업 허브로 번영을 구가했던 우한전자상가는 2010년을 정점으로 퇴락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인터넷 쇼핑몰의 급성장으로 발품을 파는 것보다는 온라인을 통해 클릭 몇 번으로 손쉽게 주문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한전자상가의 많은 매장들은 IT물류보관센터로 전락해버렸다. 여기에는 샤오미의 출현도 한 몫 했다.

 

레이쥔의 모교 우한대학은 의구한데 부교 우한전자상가는 간데없다. 몇 해 전 춘절 무렵, 레이쥔은 우한전자상가에 들렸다가 물류창고로 변한 매장을 지키는 옛 친구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레이쥔은 “미안하다”라는 말만 몇 번이나 반복했다.

 

1989년 5월, 레이쥔은 우한전자상가에서 평생의 지기이자 4년 학교선배인 왕췐궈를 만났다. 현재 진산 부총재겸 CIO(최고정보관리책임자)로 재직중인 왕췐궈는 당시 대학조교 겸 우한대학부설 컴퓨터회사의 기술유지보수팀장을 맡고 있었다. 둘은 의기가 투합하여 C언어를 이용한 암호화소프트웨어의 사용자인터페이스(UI)를 발명하기로 했다. 그해 8월 둘은 C언어 설계 등 암호화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이를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나 시장사람들은 그 레이쥔 생애 최초의 상품을 철저히 외면했다.

 

최초 상품이 전량 폐품으로 처리된 그해 말, 중국 땅에 컴퓨터바이러스가 출현했다. 이번에 레이쥔은 동기생 펑지홍과 함께 컴퓨터 백신개발에 매달렸다. 펑지홍은 후일 이렇게 술회한다.

 

“그해 우한의 겨울은 너무 추웠다. 방학이라 학교식당도 문을 닫아 우리는 등산용 버너로 라면을 끓여 끼니를 때웠다. 레이쥔은 내가 끓여준 라면을 참 맛있게 먹었다. 겨우 내내 우리 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눈보라를 헤치고 회사로 출퇴근했다. 추위로 갈라진 손잔등을 호호 불면서 '면역90'을 개발해 내었다.”

 

컴퓨터 백신 '면역90'은 프로그래밍의 언어로 PASCAL 체계를 활용했다. '면역90' 최종 버전은 당시 모든 바이러스를 검사 치료 삭제 격리조치를 포함한 면역기능을 구비했다. 게다가 중영문 호환 환경과 백신DB를 자동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기능까지도 완비했다. 지금은 별 것 아니지만 1989년 말 스무 살 청년이 개발해낸 것 치고는, 신기한 발명품이었다. 한국영화 '신기전'의 화살이나 '최종병기 활'의 활에 비유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면역90' 한 세트의 판매가는 260위안으로 우한에서만 몇십 세트가 팔려 그들은 몇천 위안을 벌었다. 몇 천원은 레이쥔이 최초로 맛 본 ‘돈의 맛’이었다. 후일 지도 교수의 추천을 받아 '면역90'은 후베이성 대학생 과학기술성과 1등상을 받기도 했다.

 

8. 생애 최초최악의 굴욕, 성취욕도착증 광천재의 무한투고

 

오늘날, 레이쥔은 세계가 공식 인증하는 달변가다. 그러나 타고난 변설가 마윈과는 달리 레이쥔의 언변은 후천적으로 단련된 것이다. 대학생 시절 레이쥔의 공개석상에서의 발언은 중언부언, 횡설수설, 엉망진창이었다. 1990년 봄 후베이성 공안국(경찰청)은 21세의 대학생 레이쥔을 연사로 초빙했다. 그가 '면역90'으로 우한바닥에서 최고의 컴퓨터바이러스 백신전문가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레이쥔은 난생 처음 국가기관, 그것도 살벌한 공안국에서의 강연인지라 연단에 오르자마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심장은 두근두근, 팔은 와들와들, 다리는 후들후들. 2시간 예정의 초청강좌를 15분 만에 끝내버렸다. 미리 준비한 강연원고에 코를 박은 자세로 다 읽어 버린 것이다. 더 이상 별도로 준비한 읽을거리도 없었다. 당황한 레이쥔은 처음부터 다시 원고를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두 번째 읽기가 끝났어도 예정종료시간 1시간이나 남았다.

 

레이쥔은 세 번째,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내려가는 3회독을 시작했다. 참다못한 후베이성 공안국장이 연단으로 뛰어 올라왔다. 공안국장은 레이쥔의 원고를 낚아챔과 동시에 그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짜이지엔!’ 작별의 거수경례를 올렸다. 그 기상천외한 3회독 강연이 공안국장의 거수경례로 무산되는 순간, 장내는 조소와 야유의 폭발음이 진동했다.

 

나라가 치욕당한 날을 ‘국치일’이라고 부르듯 레이쥔 개인에게는 ‘개치일(個恥日)’이라고나 할까, 그 날은 21년간, ‘칭찬100, 꾸중0’ 비중의 ‘절대찬양’을 들으며 살아온 스무 한 살 레이쥔 생애 최악의 모욕 굴욕 치욕 3욕의 망신살이 한꺼번에 겹친 날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인데, 레이쥔은 특이했다. 특이해도 여간 특이한 게 아니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무대공포증, 발표울렁증에 걸려 평생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남아, 죽어도 연단에 두 번 다시 서지 않으려고 할 텐데, 레이쥔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계속 초청강연에 응하면서 1시간 강연이라면 10시간 이상의 준비를 하고 거울 앞에서 3회 이싱의 리허설을 했다. 이러한 강연 준비 방법’을 자신의 생활철칙으로 제정해 습관화했다. 그러자 음성녹음파일을 MP3로 변환하듯, 눌변의 레이쥔을 달변의 레이쥔으로, 스스로 언변파일자체를 전환해버렸다.

 

그 무렵 레이쥔은 “나도 신문에 내 이름이 나온 유명인사” 가 되어 후베이 공안국에서의 굴욕을 만회하고 싶었다. 컴퓨터에 관한 작문을 어느 지방일간지에 투고했으나 게재되지 않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으로 계속 투고 했으나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오기가 발동한 레이쥔은 무려 30편을 투고해보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그 신문사도 참 어지간하다. 집념의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한번 쯤 실어주지).

 

보통 사람이라면 삼세번이라고 3번 정도 도전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포기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레이쥔은 무려 30번이나 도전하여 실패했는데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를 ‘비정상 인간’ 또는 ‘집념의 사나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진부하다. 성공강박증과 성취욕도착증 합병증 중증환자 광(狂)천재, 레이쥔은 전방위 전천후 무한투고 작전을 펼쳤다. 각종 잡지와 신문의 논조와 특색, 필진의 성향 등을 면밀히 조사 분석했다.

 

그런 후 레이쥔은 여러 편의 원고를 한꺼번에 연발의 기관총 발사하듯 여러 군데에 중복 삼중복 투고했다(당시 중국에는 중복투고, 중복게재에 대한 규제가 없었다). 마침내 투고하는 족족 게재되기 시작했다. 레이쥔 이름을 단 똑 같은 글이 5군데의 매체에서 동시에 게재되기도 했다. 유수한 컴퓨터관련 잡지사의 고정필진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특히 학술논문 ‘컴퓨터연구와 발전’ 창간호에 그의 컴퓨터백신관련 소논문이 실린 것은 향후 레이쥔 IT업계 생애에 주요한 동력원으로 작용했다. ‘중국 최연소 컴퓨터바이러스백신전문가’, 앳된 얼굴 스무 한 살 그 시절 레이쥔의 대표 스펙이었다.

 

9.‘어린 짝퉁왕자 레이쟙스’에서 ‘카피켓 거지왕자’로

 

레이쥔은 우한대학 입학 2년 만에 졸업학점을 모두 이수했다. 신입생 시절 운동장을 한밤중에 수십 바퀴 돌면서 세운 목표를 완수한 것이다. 레이쥔은 3학년 때 부터 IT창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왕췐궈, 리루슝 등 선배와 동기들과 함께 컴퓨터회사 산써를 설립하고 중문입력 시스템 진산한카를 모방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레이쥔 생애 제3호 제품이자 제1호 짝퉁제품이었다. 짝퉁은 원품에 비해 품질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반값이었다. 그러자 원품은 파리를 날리는데 짝퉁은 불티가 날렸다. 레이쥔의 수중에는 한때 100만 위안 가까이 굴러들어왔다.

 

앞서 레이쥔이 심혈을 기울여 시장에 내 놓은 제1호 제2호 제품들은 창작품에 가깝지만 돈맛은 제대로 못 보았다. 반면에 제1호 짝퉁으로 제대로 된 돈맛을 보았다. 몇 달간 우한바닥에서 어린 짝퉁왕자, 레이쥔은 최연소 백만장자로, ‘어린 백만장자’로 인구에 회자되었다. 제1호 짝퉁에 감명받은 소비자들은 레이쥔을 중국의 ‘스티브 잡스’라는 뜻으로 ‘레이잡스’라는 예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레이쥔은 샤오미를 창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본명보다 ‘레이잡스’로 불러주길 바랄 정도로 예명을 좋아했으나, 샤오미가 잘 나가자 완전히 변했다. 스티븐 쟙스와 함께 ‘레이잡스’도 죽었으니 두 번 다시 자신을 레이잡스로 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메뚜기도 한철, 짝퉁도 한철이다. 대학생 레이쥔이 만든 원조짝퉁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도 월등한 대기업 대자본의 ‘짝퉁의 짝퉁, 짝퉁의 후손’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짝퉁은 대를 이을수록 우성유전자만 드러나는가, 갈수록 윗대보다 높아가는 막강 경쟁력(?) 짝퉁의 F1, F2. F3......, 들에 의해 원조짝퉁 레이쥔 산써의 매출액은 급전직하 했다. 순식간에 회사의 운영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 젊은 짝퉁고양이(카피캣)들은 밥 먹기도 어려워졌다. 그들은 6개월 만에 카피캣 하우스 산써를 자진 철거해버리기로 했다. 카피캣 하우스의 잔해에서 레이쥔과 왕젠궈는 각각 286피시와 프린터를 한 대를 건졌고 리루슝은 386피시 한 대를 주어 들었다.

 

어린 백만장자, 어린 짝퉁왕자, ‘레이잡스’에서 ‘카피캣 거지왕자’로의 신분하락이었다. 낙차가 꽤 큰.

 

10.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하늘로 날 수 있다

 

태풍 길목에 서면 돼지도 하늘로 날수 있다. 1992년, 22세의 레이쥔은 당시 중국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진산에 입사했다. 입사 7년만인 29세, 레이쥔은 진산의 총수자리에 올라 중국청년들의 우상이 되었다. 하지만 후일 레이쥔은 진산 16년을 회고할 때면, 항상 인상부터 찌푸리며 푸념한다.

 

“울던 날이 웃던 날부터 훨씬 많았던, 고통의 연속이었던 시절이었다.” 이 대목에 레이쥔은 입조심해야 할 것 같다. 만일 그가 한국에 와서도 이렇게 투덜댄다면, “그래 너 잘났다. 22세에 대기업에 입사하여 29세에 그 기업의 총재로 등극한 성취감을 실컷 누려 놓고서는 고통의 시절이었다니!, 양껏 돈을 못 먹었다는 푸념은 그 잘 난 샤오미 짝퉁폰 메모장에나 갈겨대라! 지금 우리나라는 20대에 평사원으로 취직하면 대단한 성공으로 친다. 이 요망한 카피켓아, 염장 좀 그만 지르고 꺼져라!” 100만 한국청년실업자들이 퍼붓는 울분을 담기에는 100만개의 욕설바가지로도 모자랄 것 같다.

 

레이쥔은 왜 진산 이야기만 하면 투덜댈까? 진산은 1980년대 중국IT산업 맹아기에 생겨난 이후 현재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IT업계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수많은 IT인재들은 그들의 모태, 진산에 대하여는 필설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정감이 배어있다.

 

그러나 진산은 주인이 있는 회사가 아니다. 이름만 민영기업이지만 실제는 민영기업의 옷만 걸친 국유기업이다. 초대 사장 장쉔롱에서부터 2대 사장 치우보귄, 3대 사장 레이쥔, 모두 오너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이었을 뿐이다. 창업자와 경영자는 회사에 대한 마음가짐과 애정의 차원이 다르다. 전자가 친부모라면 후자는 남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회사에 자신의 지분이 한 푼도 없는 경영자는 멀면 ‘나그네’요, 가까우면 ‘전당포 아저씨’이다.

 

진산의 돈줄은 거대국유기업 스통이 잡고 있었고 진산의 소프트웨어는 중국대표민영기업 렌샹(lenovo)이 쥐고 있었다. 스통과 렌샹의 괴뢰나 다름없는 진산의 목표는 몽롱했다. 그러니 발걸음도 우왕좌왕했다. 워드프로세스부터 전자사전으로, 바이러스백신으로, 게임으로 주력업종을 전전하였다.

 

진산은 새천년 들어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아래 표 참조) 중국 IT 3대거두가 인터넷 마이다스의 손으로 급성장한 것과는 반대로 깊은 침체상태에 빠졌다. 더구나 진산은 MS와의 해적판 논쟁의 틈바구니에 머리를 처박았다가 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2007년 초 레이쥔은 진산을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시켜놓은 직후, 돌연 사표를 던졌다.

 

“점진적 개혁지향의 회사에서 창업자가 아닌 자는 결코 혁명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점진적 입헌군주론자 캉요우웨이가 민주공화혁명가 국부 손중산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왜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하늘로 날아오르는데 우리는 연조차 날리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우리가 진산이라는 염전에다 화초를 심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레이쥔은 회한어린 자문자답의 이임사를 맺었다. 진산 총재를 사직함으로써 37세의 젊은 나이로 현업의 강호를 떠났다. 그러나 마윈은 마윈, 레이쥔은 레이쥔. 후베이 강호는 예사 강호와 전혀 다르다. 레이쥔은 마윈의 애독서 ‘소오강호’의 주인공이 호탕하게 웃으며 빈손으로 강호를 훌훌 떠난 것과는 전혀 다르다.

 

배신과 모략의 몽롱미 넘치는 후베이 강호의 괴재, 레이쥔은 2004년 진산의 계열사 줘웨왕을 아마존(http://www.amazon.cn/)에 인수합병시키면서 개인재산 7500만 달러를 챙겼다. 게다가 퇴직 직전 진산을 홍콩 증시에 상장시키면서 꿰찬 3억 5억천만 홍콩달러 덕분에 2007년 말 기준 중국갑부서열 10위에 랭크되었다. 그렇게 레이쥔은 천문학적 거액을 챙겨들고 대륙갑부의 강호를 떠나 글로벌슈퍼리치의 망망대해로 나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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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강효백 경희대 중국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원문: 데일리안

댓글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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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r.CEO 2015.12.28 19:50
    저희 보석나라도 항상 배우는 자세로,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심을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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