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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에게 미래는 없다?

2016.03.3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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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은 ‘금수저 흙수저’론이다. 그리고 한국 언론이 이 새로운 이론을 다루는 방식은 그들이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방식과 정확히 포개어진다. 그 지점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에디터 신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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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흙수저’론, 소위 ‘수저계급론’에 대해 여기서 새삼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한국에서 이 비관적 운명론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유복한 집안 출신을 가리키는 영어 표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에서 유래한 신조어로, 가진 것 없는 무산계급을 ‘흙수저’, 그 반대를 ‘금수저’로 지칭한다. 즉, 내가 출생과 동시에 획득한 수저의 재질은 부모 혹은 그 윗세대가 결정하며, 그게 앞으로의 내 사회적·경제적 계급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평생. 

이것이 ‘금수저 흙수저’론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의 거의 전부다. 왜냐하면 이 운명론의 골자가 내 운명이, 심지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완결돼버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도 이런 스포일러가 없다. 태어나는 순간 숟가락 하나씩 차례로 배급 받고는 그길로 끝이다. “혹시 금수저이신가요?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눈앞에 창창한 미래가 펼쳐져 있군요!” “흙수저라고요? 꽝!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일단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버리면 그 다음부턴 내가 할 수 있는 것,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운명론에 의하면 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신조어가 등장해 널리 쓰이고 있는 현상, 그리고 이런 양극화와 불평등의 문제가 고착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리포트하는 것 외에, 언론에서 쓸 수 있는 기사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주요 일간지와 시사주간지들은 거의 매일 경쟁적으로 금수저 흙수저를 기사 제목으로 내걸었다. 그러자 어느 날부턴가 이 수저계급론이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금수저 흙수저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지 자세히 살펴보면 해당 매체의 성향 및 정치적 입장, 주요 독자층, 주요 광고주, 2030세대를 바라보는 시각 등을 유추할 수가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조선일보>가 지난 10월부터 게재한 기사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헬조선’은 불평분자들 마음속에(10월 17일)” “인생은 수저 한 벌만 쓰지 않는다(11월 2일)” “원조 흙수저 정주영이 묻습니다. 이봐, 해봤어?(11월 25일)” “실리콘밸리 뚫은 흙수저(11월 26일)” “나는 흙수저라 좋다(12월 23일)” “흙수저가 금수저를 이기는 법(12월 25일)”. 요약하자면 “요즘 젊은 것들은 왜 이리 불평불만이 많아? 우리 때는 말이지”라는 훈계와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도전하는 젊음이 아름답다!”라는 해맑은 ‘강 건너 불구경’의 혼용이다. <동아일보>도 비슷하지만 메시지가 좀더 고압적이라는 점에서 인생의 롤모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70대 큰아버지 같다. “하늘이 감동할 만큼 노력해봤나요?… 흙수저 탓만 하는 세대에 일침(2015년 12월 21일)” “민주-산업화 일궈낸 나라인데… 금-흙수저로 청년들 절망해서야(2016년 1월 6일)” “세계 50대 부자 70%는 흙수저 출신(1월 28일)” “수저계급론에 빠진 젊은 세대, 기업가 정신 일깨워줘야 할 때(2월 11일)”. 그에 비하면 <중앙일보>의 논조는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관조적이다. “흙수저들의 희망을 꺾지 말자(2015년 11월 12일)” “금수저 부모들의 자식 사랑법(12월 9일)” “을미년, 수저계급론이 가장 아팠다고 전해라(12월 30일)” “흙수저를 땅에 묻으세요(2016년 2월 3일)”. “요즘 젊은 사람들 참 살기 어렵대”라고 동정을 담아 말하지만 내심 ‘하지만 쟤들보다 잘난 내 자식은 그렇게 살 일이 없지’ 하며 안도하는 ‘사모님’이 연상된다. 한마디로 ‘남 일’인 것이다. 이들 일간지는 보수 성향이고,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층은 현재 청년 세대가 아니라 경제부흥기를 몸소 겪은 그들의 부모 세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진보 성향의 매체들은 이런 기사를 실었다. “청춘이여, 분노하라(12월 17일)” “금수저, 흙수저… “넌 뭘 물고 나왔냐” 묻는 나라(12월 20일)” “고생해본 적도 없으면서 청년 기사를 쓴다고?(2016년 1월 12일, 이상 <경향신문>)” “젊음의 두 얼굴, 수저 싸움과 수저 없는…(2015년 12월 9일)” “청년의 등을 떠미는 무책임한 손(1월 20일)” “왜 분노하는 대신 혐오하는가(2월 11일, 이상 <한겨레>)” “흙수저 입에 물고 ‘노오력’ 해봤자(2015년 12월 26일)” “흙수저 나무라기 전에 금수저 너나 잘하세요(2016년 1월 22일, 이상 <시사IN>)”. 이들 매체들은 현 상황을 리포트하며 다분히 청년 세대의 입장에서 분노하고, 그들의 분노와 행동을 촉구했다. 분노하라!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항의하라!  자, 어서 짱돌을 던지라고!  

이 와중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이 수저계급론에 묘하게 얹는 이들도 등장했다. “80~90년대 출생자는 금수저, 흙수저 아닌 설탕수저(황교익 칼럼니스트, ‘모유 대신 분유를 먹으며 자란 세대가 단맛에 중독됐다’는 주장을 하며)” “흙은 금보다 좋다! 황토침대, 흙침대 눈길(<아시아뉴스통신>)” “금수저와 흙수저, 뇌 구조도 다르다?(<브레인미디어>)”. 금수저와 흙수저가 등장하는 보드게임이 출시됐고,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나도 흙수저에서 신분상승했다”며 한마디 거들었으며 안철수 국민의당 위원장은 ‘흙수저 체험’을 하겠다며 편의점과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미디어에서 아무 데나 ‘골든타임’이란 표현을 갖다 붙이던 한 시절이 문득 겹쳐 보였다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모두가 각자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경쟁적으로 수저계급론을 소비하지만, 정작 이 우울한 계급론의 당사자인 청년 세대를 진지하게 걱정하고 대안을 궁리하는 모습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보수든 진보든, 지금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라면 현재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된 데에 크고 작은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거대한 구조적인 모순을 만들어놓고, 현재를 살아내야 할 다음 세대에게 개인의 능력과 용기만으로 그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투쟁하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 그리고 잔인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사회의 화두는 ‘웰빙’이었다. 2016년 현재, 2030 세대의 화두는 ‘생존’이다. 세상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몰락했다. 더 이상은 “우리 젊을 때처럼 열심히 노력하라”는 설교도, “지금 너희가 이렇게나 비참하다”라는 상세한 보고서도 읽고 싶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현 가능한 개혁과 구체적인 대안이다.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출처 : sin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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